
“우리 아이는 책을 펴도 10분을 못 버텨요.”
“숙제를 하다가도 계속 스마트폰을 확인해요.”
요즘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이 자주 털어놓는 고민이다. 스마트폰과 유튜브, 게임, 소셜미디어는 이미 아이들의 일상이 됐다. 특히 짧은 시간 안에 새로운 장면과 정보를 연속적으로 보여주는 숏폼 콘텐츠는 아이들에게 매우 익숙한 미디어 형식이다.
그러나 스마트폰이나 숏폼이 아이의 집중력을 떨어뜨린다고 단순하게 결론 내리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디지털 미디어의 영향은 이용 시간뿐 아니라 콘텐츠의 종류와 이용 목적, 아이의 연령과 특성, 가정환경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소아과학회(AAP)도 아동·청소년의 디지털 미디어 이용을 단순히 ‘몇 시간 사용했는가’만으로 판단하기보다 아이와 콘텐츠, 이용 맥락, 보호자의 행동, 수면·운동·가족활동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것을 제안한다.
부모가 주목해야 할 것은 스마트폰을 없앨 것인가가 아니다. 디지털 환경 속에서도 아이가 자신의 주의를 스스로 조절하고, 쉽게 포기하지 않으며 한 가지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힘을 어떻게 길러줄 것인가에 있다. 이는 장기적인 목표를 향한 열정과 끈기를 뜻하는 ‘GRIT’과도 맞닿아 있다.
집중력은 ‘오래 앉아 있는 능력’만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는 아이를 보고 집중력이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몰입에는 해야 할 일에 주의를 기울이고, 다른 자극이 나타나도 충동을 조절하며, 집중이 흐트러졌을 때 다시 하던 일로 돌아오는 과정이 포함된다.
책 읽기, 퍼즐 맞추기, 블록 조립, 그림 그리기, 악기 연습도 이런 능력을 경험하는 활동이 될 수 있다. 공통점은 결과가 즉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간의 지루함과 시행착오를 지나야 비로소 완성에 도달한다.
아이에게 처음부터 오랜 시간 집중하거나 어려운 일을 끝까지 해내라고 요구할 필요는 없다. 10분 동안 책을 읽거나 퍼즐 하나를 맞추는 것처럼 연령과 발달 수준에 맞는 작은 목표에서 시작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몇 분을 집중했느냐가 아니라 ‘시작하고 끝내는 경험’을 쌓는 것이다. 작은 목표를 세우고 완수하는 과정이 쌓이면 아이는 어려움이 생겨도 다시 시도하는 법을 배워갈 수 있다. “왜 집중을 못 해?”라고 다그치기보다 “집중이 흐트러졌는데 다시 돌아왔네”처럼 과정을 구체적으로 짚어주는 편이 좋다.
이러한 경험은 GRIT과도 연결된다. GRIT은 단순히 오래 집중하는 능력이 아니라 원하는 결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신이 세운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힘에 가깝다. 작은 과제를 끝까지 완수하는 경험은 이러한 끈기를 연습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스마트폰을 빼앗기보다 집중할 환경을 만들어야
아이가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찾는 모습을 보면 부모는 걱정이 앞선다.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고, 친구와 뛰어놀거나 가족과 이야기하는 시간보다 화면을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게 된다.
이럴 때는 단순히 스마트폰 사용시간만 따지기보다 디지털 미디어가 아이의 일상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충분한 수면과 신체활동, 독서와 놀이, 가족 간 대화처럼 성장기에 필요한 다양한 경험이 줄어들고 있다면 미디어 사용 습관과 환경을 함께 조정해볼 필요가 있다.
AAP가 제시하는 ‘5Cs’ 역시 아이(Child), 콘텐츠(Content), 감정 조절(Calm), 다른 활동을 밀어내는지(Crowding Out), 소통(Communication)을 함께 살펴보도록 권한다. 이런 관점에서 부모는 “오늘 스마트폰을 몇 시간 했지?”라고 묻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동안 아이의 일상에서 놓치고 있는 것은 없을까?”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집중하는 시간에는 환경도 영향을 미친다. 숙제나 독서를 할 때 스마트폰을 다른 장소에 두거나 불필요한 알림을 끄는 방법이 있다. 아이의 의지만 시험하기보다 집중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무조건 멀리하게 하는 것만이 해답은 아니다. 필요할 때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되, 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스스로 내려놓고 다시 자신의 목표로 돌아올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이 등장하는 환경에서 자신의 주의를 조절하고 하던 일을 이어가는 경험 역시 끈기를 키워가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아이의 자기조절, 부모의 미디어 습관에서 시작된다
아이에게 미디어 사용 규칙을 요구한다면 부모의 사용 습관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식사를 하면서 메시지를 확인하고, 아이와 대화하면서 화면을 바라보면서 아이에게만 “스마트폰을 그만 보라”고 한다면 규칙의 설득력은 떨어질 수 있다.
부모에게도 업무와 소통을 위해 스마트폰이 필요하다. 부모의 사용 자체를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식사나 가족 대화 시간만이라도 함께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것처럼 가족이 공유할 수 있는 원칙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뿐 아니라 일상에서 보여주는 행동과 습관을 자연스럽게 보고 배운다. 부모가 무엇에 시간을 쓰고 어디에 주의를 기울이는지도 아이에게는 하나의 본보기가 된다. 미디어 교육 역시 아이에게만 규칙을 요구하기보다 가족이 함께 건강한 사용 습관을 만들어가는 방향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숏폼 시대일수록 ‘긴 호흡’을 경험하게 하자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에서는 디지털 기술과 AI를 활용해 정보를 찾고 결과물을 만드는 일이 지금보다 훨씬 빠르고 쉬워질 것이다. 그러나 빠르게 답을 얻는 능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를 오래 들여다보며, 시행착오를 거쳐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키는 힘도 필요하다.
특히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책 한 권을 끝까지 읽고, 관심 있는 주제를 깊이 탐구하고, 만들던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아도 방법을 바꿔 다시 시도하는 경험이 중요한 이유다. 이런 과정에서 아이는 즉각적인 결과에만 기대지 않고 어려움 속에서도 배움과 도전을 이어가는 힘을 키울 수 있다.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일도 여기에 있다. 아이가 지루해 하거나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곧바로 해결해주기보다 스스로 생각하고 다시 시도할 시간을 허용하는 것이다.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무엇을 시도했고 어떻게 다시 해볼 것인지 함께 이야기한다면 실패 역시 다음 도전을 위한 경험이 될 수 있다.
AI가 빠르게 답을 제시하는 시대일수록, 아이에게는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를 붙들고 스스로 생각하며 끝까지 해결해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원하는 결과가 바로 나오지 않아도 다시 시도하고, 자신의 관심과 목표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경험이 쌓일 때 아이는 변화가 빠른 환경에서도 배움을 이어갈 수 있다.
스마트폰과 숏폼을 무조건 멀리하는 것만으로 이러한 힘을 기를 수는 없다. 아이가 읽고, 생각하고, 기다리고, 직접 해보고, 실패한 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을 일상에서 충분히 경험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AI 시대의 GRIT은 거창한 훈련이 아니라 이렇게 작은 도전을 스스로 이어가고 끝내보는 경험에서 시작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