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어떻게 신앙을 만나는가 - 25. 악은 왜 존재하는가

악은 하나님의 실패인가, 인간 자유의 그림자인가

자유의지는 사랑을 가능하게 하지만 폭력도 가능하게 한다

십자가는 고통의 해답보다 깊은 하나님의 동행이다

전쟁의 폐허 한가운데 타오르는 작은 촛불은, 악과 고통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하나님의 희망과 임재를 상징한다.

25. 악은 왜 존재하는가

     - 선한 하나님과 고통의 모순 

 

 

 

뉴스는 매일 인간의 신앙을 시험한다. 전쟁터에서 집을 잃은 아이, 갑작스러운 재난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 이유 없는 범죄의 피해자가 된 이웃의 얼굴 앞에서 사람들은 묻는다. ‘하나님이 선하시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이 질문은 신앙이 약해서 나오는 질문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선하시다고 믿기 때문에 더 날카롭게 생기는 질문이다.

 

철학에서는 이를 ‘악의 문제’라고 부른다. 스탠퍼드 철학백과는 악의 논증을, 세상에 존재하는 나쁜 상태들이 전능하고 전지하며 도덕적으로 완전한 하나님과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가를 묻는 논증으로 설명한다. 논리적으로는 ‘악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하나님은 불가능한가’를 묻고, 경험적으로는 ‘이토록 많은 악은 하나님 존재를 매우 의심스럽게 만들지 않는가’를 묻는다.

 

이 질문이 오늘 더 절박한 이유는 악이 추상이 아니라 통계와 화면과 이름으로 우리 앞에 놓이기 때문이다. 2026년 국제 인도주의 기구들은 2억 4천만 명 이상이 인도적 지원과 보호를 필요로 한다고 보고했고, 2025년 말 기준 전쟁과 폭력으로 자기 나라 안에서 떠돌게 된 국내 실향민도 6,870만 명에 이르렀다. 악은 철학자의 책상 위 개념이 아니라, 세계의 울음이다.

 

신정론은 ‘하나님은 의로우신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단어 자체는 하나님을 변호하는 논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신정론은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고통받는 사람 앞에서 ‘다 뜻이 있다’고 쉽게 말하는 순간, 신정론은 위로가 아니라 상처가 된다. 피해자의 눈물을 덮어버리는 설명은 신앙의 언어가 아니라 강자의 언어다.

 

그래서 악의 문제를 다룰 때 가장 먼저 지켜야 할 태도는 침묵의 윤리다. 고난의 현장에서는 설명보다 곁에 있음이 먼저다. 철학은 질문을 정리할 수 있지만, 울고 있는 사람의 손을 대신 잡아주지는 못한다. 신앙은 그 손을 잡는 자리에서 시작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악이 왜 존재하는지 묻지 않는 신앙은 현실 앞에서 너무 약하고, 악을 너무 쉽게 설명하는 신앙은 인간 앞에서 너무 잔인하다. 성숙한 신앙은 ‘모른다’고 말할 줄 알면서도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고백을 놓지 않는 긴장 위에 선다.

 

어거스틴은 악을 하나님의 창조물로 보지 않았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선하게 창조하셨다면 악은 어디서 왔는가. 어거스틴의 답은 ‘악은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선의 결핍’이라는 것이었다. 어둠이 별도의 물질이라기보다 빛의 부재인 것처럼, 악은 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생긴 비어 있음과 뒤틀림이다.

 

이 관점은 중요한 통찰을 준다. 악은 하나님과 대등한 또 하나의 힘이 아니다. 악은 창조 질서를 무너뜨리고, 관계를 왜곡하고, 사랑을 자기중심성으로 바꾸는 부패다. 살인, 거짓, 착취, 배신은 무엇인가가 새롭게 창조된 것이 아니라, 생명과 진실과 정의와 사랑이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서 빠져나간 상태다.

 

하지만 이 설명은 자연재난과 무고한 고통 앞에서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지진, 홍수, 질병, 어린아이의 죽음 앞에서 ‘결핍’이라는 말은 너무 차갑게 들릴 수 있다. 그래서 어거스틴의 설명은 악의 존재론을 해명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고통받는 사람의 눈물을 모두 닦아주지는 못한다. 신앙은 철학적 설명 이후에도 다시 현장으로 내려가야 한다.

 

기독교 신앙에서 인간은 자동인형이 아니다. 인간은 사랑하고 선택하고 책임지는 존재다. 자유의지의 논리는 여기서 출발한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진짜 사랑을 원하셨다면, 인간은 하나님을 거절할 가능성도 가져야 한다. 강요된 사랑은 사랑이 아니며, 프로그래밍된 선행은 도덕이 아니다.

 

자유의지는 인간의 존엄을 가능하게 하지만 동시에 악의 문도 연다. 한 사람이 자유를 사랑으로 사용할 때 돌봄과 정의가 생긴다. 그러나 자유를 지배와 탐욕으로 사용할 때 전쟁, 범죄, 폭력, 착취가 생긴다. 자유는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인간의 죄성 안에서 위험한 칼이 된다.

 

이 설명은 범죄와 전쟁 같은 도덕적 악을 이해하는 데 힘을 가진다. 그러나 자유의지 역시 모든 악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태풍과 전염병과 어린 생명의 고통을 단순히 인간 자유의 결과로만 말할 수는 없다. 따라서 자유의지 변론은 악의 문제에 대한 중요한 조각일 뿐, 전체 답안은 아니다.

 

성경에서 악과 고난의 문제를 가장 깊이 다루는 책은 욥기다. 욥은 의로운 사람이었지만 모든 것을 잃는다. 그의 친구들은 고난을 죄의 결과로 설명하려 한다. 그들의 논리는 단순하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 그러므로 네가 고통받는다면 네 안에 숨은 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욥기는 이 단순한 도식을 무너뜨린다.

 

욥기의 핵심은 고난의 모든 이유를 인간이 계산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고난이 언제나 벌이라면 세상은 너무 단순한 회계장부가 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악인이 번성하기도 하고 의인이 고통받기도 한다. 욥기는 그 불편한 현실을 신앙 안으로 끌어들인다.

 

욥기의 하나님은 욥에게 모든 사건의 배후 설명서를 주지 않는다. 대신 인간의 지혜를 넘어서는 창조 세계의 깊이 앞에 욥을 세운다. 이것은 고통을 가볍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설명 욕망을 낮추고, 고통받는 자를 함부로 판단하지 못하게 한다. 신앙은 고난의 이유를 다 아는 체하는 태도가 아니라, 모르는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 항의하고 매달릴 수 있는 관계다.

 

어떤 신정론은 고난을 통해 인간이 성숙한다고 말한다. 존 힉의 ‘영혼 형성’ 신정론은 악과 고통이 인간을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는 덕 있는 존재로 성장시키는 환경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실제로 사람은 고난 속에서 겸손, 인내, 공감, 용기, 연대의 깊이를 배우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반드시 붙어야 할 문장이 있다. 고난이 사람을 성숙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은 고난 자체가 선하다는 뜻이 아니다. 전쟁이 아이를 어른스럽게 만들었다고 해서 전쟁이 정당해지지 않는다. 질병이 가족의 사랑을 깊게 했다고 해서 질병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범죄 피해자가 강해졌다고 해서 범죄가 의미 있는 사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신앙은 고난을 미화하지 않는다. 다만 하나님께서 인간이 망가진 자리에서도 회복의 씨앗을 자라게 하실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악을 선이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악이 최종 발언권을 갖지 못한다고 믿는 것이다.

 

기독교가 악의 문제에 대해 내놓는 가장 깊은 대답은 논문이 아니라 십자가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인간의 고통을 멀리서 관찰하는 분이 아니라, 고통의 한가운데로 들어오신 분이라는 선언이다. 예수는 폭력과 배신과 억울한 재판과 조롱과 죽음을 통과하셨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하나님은 고난을 모르는 신이 아니다.

 

십자가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질문에 모든 설명을 주지 않는다. 대신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라는 질문에 답한다. 하나님은 피해자의 울음 바깥이 아니라 그 울음 곁에 계신다.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악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그 현실을 자기 몸으로 짊어지신다.

 

부활은 악의 종말을 향한 약속이다. 악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최종 승자가 아니라는 선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고통을 설명하는 사람으로 부름받기보다 고통을 줄이는 사람으로 부름받는다. 굶주린 자에게 밥을 주고, 폭력의 피해자를 보호하고, 재난의 현장에 손을 내밀고, 범죄를 가능하게 하는 구조를 바꾸는 일이 신앙의 현실적 신정론이다.

 

오늘의 세계에서 악은 세 가지 얼굴로 반복된다. 첫째, 전쟁은 인간 자유가 집단적 탐욕과 권력욕으로 변질된 결과다. 둘째, 재난은 자연의 위험과 인간 사회의 불평등이 결합될 때 더 잔혹해진다. 같은 홍수라도 가난한 지역의 피해가 더 크고, 같은 질병이라도 의료 접근성이 낮은 사람이 더 빨리 무너진다. 셋째, 범죄는 개인의 악한 선택이지만 동시에 방치된 구조와 문화 속에서 자란다.

 

따라서 악의 문제는 단순히 ‘하나님은 왜 막지 않으셨는가’에서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왜 막지 않았는가’도 함께 물어야 한다. 하나님을 향한 질문은 인간의 책임을 지우지 않는다. 오히려 더 무겁게 만든다.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은 악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악에 저항할 수도 있다.

 

신앙은 악을 설명하는 체계가 되기보다 악을 거부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전쟁 앞에서는 평화를, 재난 앞에서는 연대를, 범죄 앞에서는 정의와 보호를 선택해야 한다.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고백은 세상을 방치하는 말이 아니라, 선을 선택하라는 부르심이다.

 

악은 왜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인간은 완전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 어거스틴은 악을 선의 결핍으로 설명했고, 자유의지 전통은 사랑의 가능성이 악의 가능성과 함께 열린다고 말했다. 욥기는 고난을 단순한 죄의 결과로 환원하지 말라고 경고했고, 십자가는 하나님이 고통의 바깥이 아니라 그 한가운데 계신다고 증언한다.

 

그러므로 신앙은 악을 가볍게 설명하지 않는다. 악을 낭만화하지도 않는다. 신앙은 울 수 있고, 항의할 수 있고, 질문할 수 있다. 동시에 악이 마지막 말이 아니라는 희망을 붙든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고통 없는 세계를 이미 소유했다는 뜻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선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철학은 악의 문제를 통해 신앙을 심문한다. 신앙은 그 심문을 피하지 않는다. 다만 신앙은 마지막에 이렇게 답한다. 악은 실재하지만 하나님보다 크지 않다. 고통은 깊지만 사랑보다 깊지 않다. 어둠은 길지만 부활의 아침을 영원히 이기지 못한다.

 

 

 

삶을 바꾸는 동화 신문 기자 kjh0788@naver.com
작성 2026.07.08 08:52 수정 2026.07.08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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